대만의 여론, 현 여당 민진당은 내심 한국과 일본,
미 태평양 전력이 대중 전략에 도움을 줄것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이런와중 전 주일 미군 사령관은
노골적으로 주한미군의 양안전쟁 투입을 발언하며
한국은 국내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가 공개한 함정 편대 다방향 근접전 훈련지도. 중국이 일련의 비전쟁 강압행동을 통해 전쟁을 하지 않고도 대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미 연구소들이 제시했다

덧붙여 중국은 대만이 아니더라도
태평양에서의 제해권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3번째로 취역한 푸젠함은
중국 함모 최초로 캐터펄트를 장착하였으며
미국내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10년 내 항모 6척을 추가 취역시켜
총 9대를 운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고 보고 했다.

이는 대만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의 방위전략에도 수정이 필요할만큼
중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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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갈등이 본격화 할 경우 현재 UN에 가입 되어 있지 않은
대만을 서방진영이 어떻게 대할지가 여전한 미지수로 남아있다

1971. 10. 25 중국을 대만이 아닌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정의하는
유엔 총회 결의안 2758호가 상정되고 가결되기에 이른다.

아래엔 중국 대표권을 갖던 대만이
장제스 대표단으로 격하 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으로 정통성을 인정받는
결의안 (상동)이 통과 되자 스스로 UN 탈퇴를 선언하고
단상에서 내려가는 대만 외교부장[1]저우수카이와

결의안 통과 직후

박장대소 하는 [2]차오관화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
황화 부부장이다

[1]저우수카이

[2]왼 차오관화, 오 황화


이후 서방, 제3세계 할 것 없이 대만은 세계 각국과 단교가
이어졌고 이사건은 국가간의 관계는 철저히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외교가의 냉혹한 면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타국의 단교 릴레이에 비해 다소 늦은 1992년에
대만과 국교를 끊었다)